해암이야기 해암이야기

감사와 겸허, 개척과 도전의 삶 海巖이종덕

세아그룹 창업주 해암 이종덕

  • 철과의 인연

    해동공업사 설립으로 철과 인연을 맺다.

    해암의 나이 21세, 일본인 회사 미나도금고상회에 입사하면서 철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금고 공장의 책임자로 일하며 사업에 눈을 뜬 해암은 1945년 광복 이후 형과 함께 을지로에 해동공업사를 설립했다. 해외에서 철강재를 들여다가 판매한 국내 최초의 판매상이었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을 시작으로 잇따른 난관과 시련에 부딪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이겨낸 해암은 1954년 해덕철강상사를 설립하여 오늘의 세아를 만드는 토양을 제공했다.

  • 세아의 주춧돌

    생애를 투자해 산업 부흥을 위한 초석기업을 일구다.

    절대빈곤의 시대, 국가가 산업화돼야 국민의 삶이 윤택해진다고 생각한 해암은 철강재를 수입 판매하던 해덕철강상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국가기간산업의 혈맥인 강관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오랫동안 열망해 온 꿈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이는 1960년 10월 세아제강의 전신인 부산 철관공업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해암은 처음 부산에 터를 잡고 공장을 지으면서 국가 산업을 크게 일으키는 “초석기업을 만든다”는 창업의지를 잊지 않기 위해 회사 이름에도 출발지인 ‘부산’ 을 넣었다.

  • 정도를 걷는 경영

    무리한 경영을 멀리하고 핵심 역량에 집중하다.

    사업에 첫 발을 내딛던 순간부터 해암은 정도(正道)경영을 중시했다. 무리한 경영을 멀리하고 내실을 다지면서 핵심 역량을 키우기에 집중했다. 남들보다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만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던 해암은 정도를 걷는 길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고, 그것은 지금 세아의 경쟁력으로 남게 되었다.

  • 뛰어난 직관과 통찰력

    철저한 준비와 앞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사업을 키우다.

    기업인으로서 해암의 장점은 앞을 내다보는 직관력에 있다. 산업화를 예견하고 적합한 사업으로 강관제조업을 선택한 것도 그 일면이다. 또 전국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 고척동의 서울 공장을 짓는 과정이나, 1969년 일찍이 기업 공개를 결정, 각종 강관제품의 개발 과정에서도 철저한 준비와 앞을 내다보는 안목을 엿볼 수 있다. 해암은 1970년 서울공장 가동으로 강관업계 선두주자 위치를 확고히 다졌고, 기업 공개를 통한 투명경영으로 회사를 오랫동안 존속시키게 되었다.

  • 효율적인 현장 경영자

    효율적인 현장 경영에서 경쟁력의 차별화가 시작되다

    세계 굴지의 강관공장을 건설하는 모든 과정은 해암의 머리에서 나왔다. 구조역학적인 복잡한 계산도 손과 머리로 계산하여 전문가들을 탄복하게 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포항 제1공장을 강관으로 지은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고, 벽돌 하나 못 한 개도 낭비가 없었다. 세아가 공장을 지으면서 ‘가장 효율적으로 공장을 건설하는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해암의 이러한 현장 경영에서 비롯되었다.

  • 신뢰와 자립경영

    경영이 투명해야 한다는 확고한 경영방침을 세우다

    해암은 금융기관에 무리하게 손 벌리는 것을 자제했다. 남의 돈에 지나치게 의지하면 자력으로 사업을 이끌어 가기 힘들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정확한 납세는 물론 경영이 투명해야 한다는 신념은 창업 9년만인 1969년 기업 공개로 구체화됐다. 기업은 튼튼한 체질로 영속되어야 하며, 항상 감사와 겸허의 정신으로 고용 안정과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세아를 가장 내실 있는 기업으로 만들었다.